안테우스는 단순한 신화 속 거인이 아니다.

안테우스는 바다의 신 포세이돈과 대지의 여신 가이아 사이에서 태어난 존재로 땅과 맞닿을 때마다 무한한 힘을 얻는 존재였다.

 

땅에 발을 디딜 때마다 더욱 강해졌고 맞붙는 자가 그를 넘어뜨려도 땅과 접촉하는 순간 다시 일어나 승기를 되찾았다.

 

이 신화는 힘의 근원이 어디에 있는가 

그리고 어디서 다시 힘을 회복하는가에 대한 고요한 진리의 은유다.

 

 

 

안테우스가 땅에서 힘을 얻은 것처럼 우리도 각자의 땅에서 힘을 얻는다. 

여기서 '땅'이란 단순한 지표면이 아니다.

 

 

 

‘땅’이란 자신의 본질과 운명, 존재의 중심과 맞닿은 자리를 상징한다.

극단으로 치닫고 흔들려도 결국 자신에게 주어진 자리, 자신의 본질과 운명에 맞닿은 곳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다.

 

그 중심은 우리를 끊임없이 부른다.

 

 

 

 

나는 내 삶에서 이 원리를 직접 경험했다.

고등학교 1학년까지 나는 공부의 의미를 찾지 못했고, 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때의 나는 게임이라는 한쪽 극단으로 모든 시간을 몰아넣었다.

 

 

 

우리 집의 가훈 '모든 일에 최선을 다하자' 를 어린 마음대로 받아들여

 '그렇다면 게임에 최선을 다하겠다' 라고 스스로를 설득했다.

 

 

 

그 극단에서 어느 날 문득 목표가 생겼다. 

공부가 하고 싶어졌다.

 

나는 공부라는 반대쪽 극단으로 치닫기 시작했다.

고등학교 2학년 때부터, 재수 기간까지 나는 매일 열두 시간씩 공부를 하고 목표를 위해 모든 힘을 쏟아부었다.

 

몰입의 강도는 게임에만 집중하던 시절과 맞먹었지만 방향은 완전히 반대였다.

 

 

 

그 끝에 다다르고 나서야 나는 처음으로 중심을 바라보았다.

마침내 대학생이 된 나는 게임과 공부라는 두 극단을 지나 삶의 균형을 찾았다. 

그리고 나만이 해야 할 일에 대해서 알게되었다.

이제 나는 극단에 머무르지 않고 즐거움과 책임, 몰입과 여유 사이를 오가며 스스로의 중심을 느낀다.

 

 

이 3단계- 

 

한쪽 극단에 치닫고, 

반대쪽 극단으로 치닫고, 

결국 중심으로 돌아오는 과정 

 

-는 단순한 경험이 아니라 삶의 근본적 법칙이자 진자운동이다.

 

 

 

 

 

 

 

 

물리학의 언어로, 삶은 이렇게 설명된다. 

 

진자는 극단으로 흔들릴수록 반동이 커져 큰 폭으로 진동하다가 점차 진폭이 줄어들며 중심으로 돌아온다. 

 

스프링을 잡아당기면 그만큼 더 강한 복원력이 작동한다.

 

관성은 움직임을 지속시키지만 그 움직임 속에도 되돌림의 힘이 숨어 있다. 

극단의 몰입과 방황, 노력-이 모든 것은 우리를 중심에서 밀어내지만

동시에 강하게 중심으로 당기는 반동을 만들어낸다.

 

안테우스처럼, 우리는 '떨어져 나간 자리'에서 다시 힘을 얻고 일어난다.

 

 

 

 

 

 

 

 

 

여기에 공진을 이야기해볼 수도 있을 것이다.

특정 사건, 특정 사람, 특정 시기와의 만남은 내면의 고유 진동수를 자극한다.

 

그 진동수와 외부 자극이 맞닿는 순간 우리는 평소보다 훨씬 크게 흔들리고 내면이 동요한다.

 

나 역시 2020년 1월 1일, 운명적인 사건으로 내 마음이 공명한 순간을 기억한다.

 

그때의 흔들림은 성장과 깨달음의 계기가 되었다.

공진은 단순한 흔들림이 아니라, 내 마음 깊은 곳을 울려 중심과 잠재력을 재발견하게 하는 힘이다.

 

 

수험생에게 이 비유는 이렇게 들릴 수 있다. 

낮은 모의고사 점수에서 오는 실망감, 열정 뒤에 찾아오는 무기력, 다가오는 시간 앞에서의 압박감-이 모든 경험은 무의미해 보이지만 그 진폭이 클수록 다시 중심으로 돌아올 때의 복원력은 더 크다.

 

 

중요한 것은 일희일비하지 않고 흔들림을 관찰하며 배우는 능력이다. 

실패와 압박조차 결국 나를 다시 중심에 데려다주는 신호일 수 있다.

 

 

 

 

 

나는 고등학교를 졸업하며 한 가지를 크게 깨달았다.

후회는 성적 때문이 아니었다. '왜 공부를 더 열심히 안 했을까?'가 아니었다. 훨씬 크게 남은 건 '왜 학교생활을 더 즐기지 못했을까?'라는 아쉬움이었다. 

 

물론 대입에서 실패했다면, 나는 아마 이렇게 후회했을 것이다.

 '왜 공부를 더 열심히 하지 않았을까?“

 

그 후회 속에는 단순한 미련만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결핍의 결핍, 아직 느껴보지 못한 부족함에 대한 갈망,

내가 가져야 했지만 손에 닿지 않았던 것에 대한 허기였을 것이다.

우리는 종종, 무엇이 부족한지도 알지 못한 채 살아간다.

 

그러나 한 번 그 결핍을 경험하는 순간

비로소 그 결핍이 내 안에서 의미로 변하고,

내가 어디를 향해 나아가야 하는지를 깨닫게 된다.

 

 

 

수험생이 아니더라도 이 신화적, 물리적 비유는 깊게 울린다.

끝없이 달리고, 미래를 위해 현재를 버리고, 가치와 욕망 사이에서 길을 잃는 날들이 있다.

 

그 끝없는 전진의 관성은 한동안 성취를 가져다주지만, 언젠가 멈출 때가 온다.

그 순간의 허탈감과 회의는 실패가 아니다. 그것은 다시 자신의 땅을 확인하고, 뿌리와 연결을 회복하라는 자연의 요구다.

 

안테우스가 땅을 잃었을 때 힘을 잃듯, 사람도 뿌리와 연결이 끊기면 에너지를 잃는다.

반대로 뿌리를 확인하고 다시 닿는 순간, 우리는 더 단단한 힘으로 직립할 수 있다.

 

 

끝까지 가보지 않으면 발견할 수 없던 것이 바로 '무엇이 나를 지탱하는가'라는 질문의 답이다.

 

 

수능 50일 전, '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은 매일 반복된다. 

 

시간이 촉박할수록 흔들림은 더 크게 느껴지고, 초조함은 극단으로 치닫는다. 

그러나 물리학은 말한다. 

진자의 주기와 용수철의 복원력처럼, 시간은 압박일수록 반동을 만든다. 지금 느끼는 극한의 흔들림, 초조, 불안-그 모든 것이 결국 중심으로 돌아오려는 힘을 키운다. 

시간은 단순히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단련하고 중심을 확인하게 하는 매개다.

 

 

극단의 방황과 강렬한 몰입은 일시적으로 우리를 중심에서 밀어내지만, 동시에 그 움직임이 크기 때문에 복원력 또한 강해진다. 

중요한 것은 그 복원력을 알아차리고, 흔들림 속에서도 자신을 놓치지 않는 것이다. 멈추고 바닥을 바라보는 것, 처음의 이유를 다시 꺼내보는 것-그 모든 순간이 회복의 시작이다.

 

안테우스는 끝내 땅에서 힘을 얻었다.

나 또한 게임이라는 극단, 공부라는 극단, 그리고 운명처럼 찾아온 공진의 순간들을 오가며 배웠다.

 

흔들림 속에서도 중심으로 돌아오는 힘을, 당신은 믿고 있는가?

 

 

 

삶은 언제나 진자의 운동과 같다.

흔들릴수록 돌아올 힘은 더 크고, 중심에 다다를 때 우리는 더 단단해진다. 극단을 경험하고,

중심으로 돌아오는 모든 순간이 바로 우리 자신을 완성하는 시간이다. 그리고 그 완성의 순간, 우리는 비로소 자신이 어디에 뿌리를 두어야 하는지, 무엇을 지탱해야 하는지 깨닫는다.

 

 

 

그 중심은 언제나 우리를 부르고 있다.

삶이라는 긴 이야기 속, 한 장의 페이지가 천천히 넘어가고 있다. 

그것이 전부가 아님을 알기에, 너무 무겁게 마음을 짓누르지 말자. 

그럼에도, 설령 한 페이지일지라도, 마음 깊이 울림을 남기는 글을 스스로에게 써 내려가는 시간이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