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밤을 지나 걷는 길 위처럼, 오늘은 유난히 공기가 맑고 가을이 가까워진 하루였습니다. 계절이 조금씩 바뀌어가는 이 시기에 이렇게 다시 글을 쓰게 되니, 마치 날씨와 함께 제 마음가짐도 달라지는 것 같습니다. 지난 칼럼을 마친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릴레이 지목을 받아 하루 만에 다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생각보다 빠른 걸음으로 다시 글 앞에 서니 낯설게 느껴지기도 했지만, 그만큼 더 자주 여러분과 마음을 나눌 수 있다는 점에서 기쁘게 글을 시작해봅니다.

앞서 이어진 릴레이 칼럼에서 다른 멘토 분들은 책과 영화, 그리고 노래를 통해 자신들의 수험생활을 들려주셨습니다. 각자의 이야기를 담아내는 방식이 달랐기에, 그 시선 하나하나가 인상 깊게 다가왔습니다. 저 역시 무엇을 소개할까 고민하다가, 오래전부터 제 안에 남아 있던 한 편의 시를 떠올리게 되었습니다.

처음 그 시를 읽었을 때는 특별한 이유 없이 그저 예쁘다고만 여겼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흘러 다시 마주했을 때는, 전혀 다른 울림으로 다가왔습니다. 오늘은 그 시와 함께, 제가 걸어온 수험생활을 다시 돌아보고자 합니다.

너에게로 가지 않으려고 미친 둣 걸었던 

그 무수한 길도 

실은 네게로 향한 것이었다 

 

까마득한 밤길을 혼자 걸어갈 때에도 

내 응시에 날아간 별은 

네 머리위에서 반짝였을 것이고 

내 한숨과 입김에 꽃들은 

네게로 몸을 기울여 흔들렸을 것이다 

 

사랑에서 치욕으로 

다시 치욕에서 사랑으로 

하루에도 몇 번씩 네게로 드리웠던 두레박 

 

그러나 매양 퍼 올린 것은

수만 갈래의 길이었을 따름이다 

은하수의 한 별이 또 하나의 별을 찾아가는 

그 수만의 길을 나는 걷고 있는 것이다 

 

나의 생애는 

모든 지름길을 돌아서 

네게로 난 단 하나의 에움길이었다..

고등학생 시절, 저는 우연히 나희덕 시인의 「푸른 밤」을 읽게 되었습니다. 특별한 계기가 있었던 것도 아니고, 수험생활과 직접적으로 연결되는 시라고 생각했던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저 푸른 밤, 은하수, 별빛 같은 단어들이 제 마음을 오래 붙잡았습니다.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그 시의 구절이 낭만적으로 다가와 자꾸만 다시 떠올랐습니다. 그때의 저는 그 끌림을 굳이 설명하지 않고, 그냥 예쁘다는 이유 하나로 기억 속에 담아두었습니다.

그렇게 잊고 지내던 시를 저는 대학에 들어와 다시 만나게 되었습니다. 어느 날 지금의 여자친구가 휴대폰 배경화면에 「푸른 밤」을 해두었고, 반가운 마음에 왜 이 시를 좋아하느냐고 물었습니다. 돌아온 대답은 사랑하는 사람을 향한 고백처럼도 읽히지만, 한편으로는 자신이 그리고 싶은 이상적인 모습, 목표를 이루어낸 자화상으로도 읽힌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말을 들으며 저는 오래전 그 시에 왜 그렇게 끌렸는지를 비로소 알 것 같았습니다.

수험생이던 저는 누구보다 치열하게 하루를 살아내고 있었습니다. 불안과 희망이 교차하는 밤, 늘 지금보다 나은 나를 마음속에 그리며 버텼습니다. 그때는 알지 못했지만, 아마도 「푸른 밤」 속의 ‘너’는 단순히 누군가를 향한 존재가 아니라, 제가 꿈꾸던 미래의 자화상이었을지도 모릅니다. 시가 말하는 길은 결국 제가 가고자 했던 길과 겹쳐 있었던 것입니다. 수많은 방황과 갈림길 끝에 하나로 이어지는 에움길처럼, 저 역시 수험생활의 불안과 흔들림 속에서 결국 하나의 길을 걸어가고 있었습니다.

돌아보면, 제가 그토록 낭만적으로 여겼던 문장들은 사실 제 마음 깊은 곳에 있던 열망을 건드리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저는 미처 알아차리지 못했지만, 그 시를 읽을 때마다 스스로 그려낸 모습과 언젠가는 닿고 싶은 자리에 대한 희미한 확신이 있었던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래서 지금에 와서 다시 읽어보니, 그 끌림이 단순한 취향이 아니었음을 깨닫게 됩니다.

저는 특히 이 구절을 오래 붙잡게 되었습니다.

“너에게로 가지 않으려고 미친 둣 걸었던 / 그 무수한 길도 / 실은 네게로 향한 것이었다.”

수험생활 동안 저는 매일 불안과 갈림길 위에 서 있었습니다. 때로는 제 선택이 맞는지, 지금의 노력이 충분한지 알 수 없어 흔들릴 때가 많았습니다. 그러나 결국 그 모든 고민과 망설임조차도 저를 다시 공부로, 목표로 향하게 만들었습니다. 이 구절은 그런 제 수험생활의 자취를 그대로 옮겨 적은 듯 느껴졌습니다.

생각해보면 주저했던 순간들, 길을 잃은 듯 머뭇거렸던 시간들조차 결국은 저를 목표로 이끌고 있었습니다. 확신이 서지 않아 방황하는 마음마저도, 결국은 제가 나아가야 할 자리를 확인하는 과정이었습니다. 그래서 이 시구는 단순히 사랑하는 사람에게 닿기 위한 고백이 아니라, 목표를 향해 치열하게 살아가는 모든 사람의 이야기처럼 다가왔습니다. 저는 이 문장에서 제 수험생활 전체를 긍정할 수 있는 힘을 얻었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의 구절이 마음에 깊이 남습니다.

“사랑에서 치욕으로 / 다시 치욕에서 사랑으로.”

하루에도 몇 번씩 불안과 의욕이 엇갈리던 수험 시절, 이 반복은 제 삶 그 자체였습니다. 의지가 꺾여 모든 것이 치욕처럼 느껴지다가도, 다시금 공부를 붙잡으면 그것이 곧 사랑처럼 소중하게 다가왔습니다. 시인이 말하는 사랑과 치욕의 순환은, 저에게 수험생활의 감정 곡선을 그대로 비추는 거울 같았습니다. 반복되는 흔들림 속에서도 결국은 하나의 우물에서 물을 길어 올리듯, 저는 같은 길을 다시 걷고 있었던 것입니다.

시라는 것은 참 묘합니다. 그 순간에는 그저 감각적으로 다가왔다가, 시간이 흘러 전혀 다른 얼굴로 다가오기도 합니다. 당시의 저는 이 시를 단순히 낭만적으로 받아들였지만, 지금은 그 안에서 수험생이었던 제 마음과 연결되는 또 다른 의미를 찾습니다. 저는 이 사실이 시의 힘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한때는 미처 이해하지 못했던 마음을, 훗날 다시 마주하게 만들고, 또 새롭게 읽게 해주기 때문입니다.

수험생활을 지나며 저는 길을 잃었다고 생각한 순간이 많았습니다. 아무리 애써도 점수가 오르지 않는 날, 시험지를 덮고 한참을 멍하니 앉아 있었던 날, 그리고 앞이 보이지 않아 모든 것이 헛수고처럼 느껴지던 날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지금 돌아보니 그 모든 날들이 결국 하나의 길 위에 놓여 있었습니다. 사소해 보였던 발걸음 하나도, 그 길을 이루는 중요한 흔적이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지금의 수험생 여러분께 이 시를 들려드리고 싶습니다. 지금은 이해되지 않는 것들이라도, 지금은 설명할 수 없는 불안과 노력의 순간들이라도, 언젠가는 분명 다른 의미로 돌아올 때가 있습니다. 밤마다 스스로를 다잡으며 쌓아온 하루하루가 언젠가는 하나의 길로 이어졌음을 확인하게 되실 겁니다.

저는 종종 생각합니다. 만약 그때 이 시를 억지로 수험과 연결 지었다면 이렇게 오래 마음에 남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설명할 수 없는 끌림으로만 간직했기 때문에, 나중에 다시 마주했을 때 더 깊게 와닿았던 것 같습니다. 그렇기에 지금 여러분에게도 굳이 모든 것을 이해하려 하지 말고, 그냥 곁에 두고 싶은 문장 하나, 붙잡고 싶은 문학의 한 구절을 찾아보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그것이 훗날 다시 돌아와 지금의 시간을 의미 있게 만들어줄 수도 있으니까요.

지금은 그 길이 어디로 향하는지 알 수 없어 두려우실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결국 그 길은 여러분만의 길로 남습니다. 때로는 주저앉고 싶었던 순간도, 아무 의미 없을 것만 같던 시간도, 돌이켜보면 모두 하나의 별로 이어져 있음을 알게 될 것입니다. 저에게는 「푸른 밤」이 그 사실을 일깨워 준 문학이었습니다.

저는 여전히 이 시의 마지막 구절을 잊지 못합니다.

“네게로 난 단 하나의 에움길이었다..”

그 문장은 제 수험생활 전체를 설명해주는 문장이 되었습니다. 푸른 밤을 걸어 별을 찾듯, 여러분의 길 역시 언젠가 단 하나의 에움길로 남을 것입니다.

은하수의 한 별이 또 하나의 별을 찾아가듯, 여러분의 하루하루도 언젠가 이어져 자신만의 별빛을 이루게 될 것입니다. 지금은 끝없이 멀어 보이는 길도, 그 끝에서 돌아보면 단 하나의 길로 남아 있을 것입니다.

그 길 위에서, 지금의 여러분이 끝내 자신만의 빛을 만나게 되기를.

푸른 밤은 언제나 길고 깊지만, 그 안에서 걸어온 발걸음은 결코 사라지지 않습니다. 별빛처럼 흩어져 쌓인 시간이 언젠가 당신의 하늘을 가득 채울 것이고, 오늘 이 순간 또한 그 별들 사이에 반짝이며 남아 있을 것입니다.

푸른 밤
흩어진 별빛 아래
당신의 걸음 또한
하나의 길이 되어 반짝이기를

P.S. 제가 다섯번째 릴레이 칼럼 주자로 지목할 멘토님은 '송현지' 멘토님이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