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에는 아직 한여름의 기운이 남아 햇살이 뜨겁습니다. 조금만 걸어도 이마에 땀이 맺히고, 뜨거운 열기가 온몸을 감쌉니다. 그런데 해가 기울면 공기는 금세 달라집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불어오는 바람은 선선하고, 저녁의 공기는 하루 종일 쌓였던 피로를 씻어내듯 가볍습니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면 낮과는 또 다른 빛깔이 펼쳐져 있습니다. 여름의 푸른 기운과 가을의 담담한 색채가 겹쳐 묘한 투명함을 만들어내지요. 그 사이에서 계절이 바뀌고 있다는 사실을 새삼 실감하게 됩니다. 어쩐지 우리의 마음처럼 복잡하면서도 특별한 풍경입니다.

그런 시간 속에서 많은 수험생들이 9월 모의평가를 마쳤습니다. 시험이 끝난 직후의 마음은 늘 여러 감정이 뒤섞입니다. 잘 본 것 같다가도 불안이 엄습하고, 결과를 받기 전인데도 벌써 수십 번 마음속에서 오르락내리락하며 스스로를 지치게 만들지요. 그렇지만 시험지에 끝까지 집중하며 임했다는 그 자체가, 이미 충분히 잘 해냈다는 증거라는 걸 꼭 전하고 싶습니다.

저도 작년 이맘때 같은 자리에 앉아 있었습니다. 서울대는 최저가 없지만, 다른 최저 기준이 높은 대학을 함께 지원하고자했던 저는 9월 모평에서 그 기준을 충족하지 못했습니다. 그 사실만으로 크게 좌절했고, 마치 그 순간 모든 가능성이 닫혀버린 것만 같았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 돌이켜보니, 그 좌절이 오히려 저를 단단하게 만들었습니다. 끝까지 수능을 준비해야 한다는 절실함이 생겼고, 결국 수능에서는 더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지금 마음이 무겁게 느껴지는 여러분께도 꼭 전하고 싶습니다. 9월의 결과가 곧 수능의 결과를 결정하는 건 아닙니다. 때로는 좌절이 성장의 발판이 되기도 하고, 작은 실패가 끝내 더 큰 도약으로 이어지기도 합니다. 오늘을 버텨낸 것만으로도 이미 큰 걸음을 내디딘 것이니, 스스로를 더 믿어주셨으면 합니다.

이 글을 쓰기로 마음먹은 것도 같은 이유입니다. 파이널을 준비하는 수험생분들뿐 아니라, 내신과 정시를 함께 붙들며 계획 앞에서 막막함을 느끼는 고1·고2 학생들까지. 누구나 ‘어떻게 시간을 채워가야 할지’ 고민하는 순간이 있습니다. 저 역시 학창시절, 빈 계획표를 앞에 두고 한참을 망설였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제가 개인 기록용으로 지인들에게만 공개했었던 공스타그램 속 플래너를 펼쳐 보이며, 계획을 세워가는 과정이 결코 특별한 사람만 할 수 있는 일이 아님을 함께 나누려 합니다.

조금은 편안하게, 그러나 진지하게. 오늘의 REPLAY 시작합니다.

저는 계획을 크게 세 단계로 나누어 세웠습니다. 그 첫 번째는 일정한 기간 동안의 방향을 세우는 일이었습니다. 아래 사진은 제가 2학년 여름방학을 시작하던 날, 방학식이 끝나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 작성했던 간단한 계획표입니다.

과목별로 방학 동안 무엇을 끝내야 할지 적어두고, 일부 과목은 계획을 마무리해야 할 날짜까지 정했습니다. 당시 3주의 방학 동안, 2학기 내신을 대비해야 했던 미적분·기하·물리학Ⅰ·생명과학Ⅱ를 일정 부분 완성해야 했고, 학생부 종합전형 준비를 위해 각 교과 과목의 학기말 피드백도 함께 써내려가야 했습니다.

돌이켜보면, 방학을 시작하는 순간은 늘 막막했습니다. 할 것은 많은데 어디서부터 손대야 할지 갈피가 잡히지 않았으니까요. 그런데 이렇게 큰 틀에서 과목별 방향을 정해두니, 하루 단위로 부딪힐 때 느껴지는 불안이 줄었습니다. 방향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조금은 가벼워졌고, 결국 짧은 방학이었음에도 모든 계획을 무사히 끝낼 수 있었습니다.

그다음 단계는 일주일 단위의 흐름을 만드는 일이었습니다. 한 달 단위로 잡아둔 큰 그림을 바탕으로, 각 주에 무엇을 할지 정리하고,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나누어 배치했습니다.

일요일은 일부러 비워두었습니다. 토요일 저녁에 일주일을 돌아보며, 밀린 공부를 채우거나 더 하고 싶은 과목을 보충하는 날로 삼았습니다. ‘6일 동안은 최대한 몰입하고, 일요일 하루는 여유와 조율의 시간으로 남겨두자’는 약속이었습니다.

물론 모든 계획이 완벽하게 지켜지지는 않았습니다. 계획보다 늦게 끝난 날도 있었고, 뜻대로 되지 않은 주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일주일 단위로 다시 계획을 세우며 흐름을 잡아갔기 때문에 끝내는 방학의 마지막 날까지 전체 그림을 놓치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기억에 남는 건, 방학이 끝나기 전날이었습니다. 계획한 것을 다 끝내고 싶다는 마음 하나로, 오전 8시부터 다음날 새벽 5시까지, 식사 시간을 빼곤 거의 쉬지 않고 책상 앞에 앉아 있었습니다. 고되었지만, 그만큼 절실했기에 버틸 수 있었던 하루였습니다.

보통 플래너라 하면 매일의 계획만 세우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렇게 달력형 주간 플래너를 함께 작성하는 것을 꼭 추천하고 싶습니다. 하루의 계획이 흔들릴 때도, 주 단위의 리듬은 방향을 다시 붙잡아주는 든든한 울타리가 되어주기 때문입니다.

마지막 단계는 하루를 채우는 일이었습니다. 아래 사진은 3학년 1학기, 수능까지 207일, 내신까지 9일을 앞두고 있었던 어느 날의 플래너입니다.

저는 하루 계획을 세울 때, 단순히 할 일만 적지 않았습니다. 각 공부의 끝나는 시간, 다시 말해 ‘마지노선’을 정해두었습니다. 단순히 공부량이 아니라 시간까지 함께 구체화해야, 하루의 흐름이 무너지지 않고 순간마다 집중할 수 있었습니다.

그 하루하루는 때로는 벅차고, 때로는 숨이 가빠오는 시간들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하루를 어떻게든 지켜내겠다는 마음이 쌓여, 결국 제 고등학교 3년을 만들었습니다. 밀리고 주저앉고 싶을 때도 있었지만, ‘오늘 하루만큼은 끝까지 해내자’는 다짐이 다시 저를 일으켜 세워주었습니다. 그렇게 이어진 하루들이 결국 원하는 곳까지 닿게 해주었습니다.

누군가에겐 이 모든 계획이 지나치게 빡빡하고, 숨 막히게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시절의 저는 하루를 허투루 보내지 않겠다는 다짐 하나로 살아갔습니다. 그래서 한 기간의 설계, 한 주의 리듬, 하루의 실천이 제 삶 속에 단단히 자리 잡을 수 있었습니다.

이 글이 파이널을 앞둔 수험생뿐 아니라, 아직 계획 세우기가 낯선 고1·고2 학생들에게도 작은 길잡이가 되기를 바랍니다. 완벽한 계획은 세상에 없지만, 계획을 세우려는 의지와 하루를 붙드는 태도는 반드시 내일을 바꾸는 힘이 됩니다.

사실 오랫동안 망설였습니다. 제 공스타그램은 그동안 가까운 이들에게만 보여주던, 제 공부의 민낯 같은 기록이었으니까요. 하지만 지금, 조금은 흔들리고 막막한 시기를 건너는 여러분에게 그 흔적이 작은 불씨가 될 수 있다면, 더 이상 숨겨둘 이유는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혹시라도 제 발자국이 궁금하다면 편히 찾아와 주세요. 스쳐 지나가는 한 번의 방문도, 이어지는 팔로우라는 작은 연결도, 여러분이 다시 책상 앞에 앉을 힘이 되어줄 수 있을지 모릅니다.

오늘의 기록을 덮으며, 저는 다음 장을 열 날을 기다립니다. 

그때의 제가 남겨둔 또 다른 시간을 꺼내, 다시 하나의 Replay로 돌아오겠습니다. 

P.S

이 칼럼을 쓰는 동안 저희 1조의 조상윤 멘토님께 릴레이 칼럼 지목을 받게 되었네요. 곧 릴레이 칼럼으로도 찾아뵙도록 하겠습니다. 지난번엔 성준 멘토님의 수험생 라디오의 일일 DJ가 되었었는데, 많은 분들께서 좋게 읽어주셔서 정말 뜻깊은 경험이었습니다. 항상 감사드리고 다음 칼럼으로 찾아뵙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