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던 시간은
어느새 문턱 앞에 고요히 도착해 있습니다.
얼마 전까지 대학에서는 중간고사 기간이었습니다.
몇 번이나 겪는 시험 기간이지만
눈 감고 계속 외면하다 보니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선명한 빛으로 코앞까지 다가왔습니다.
막상 집에서 공부를 하려니 집중이 안 됐습니다.
고등학생 때나 지금이나
집에서 공부하기 힘든 건 여전하더군요.
그래서 큰맘 먹고 스터디카페에 가서 공부했습니다.
오랜만에 스터디카페에 가니 익숙한 모습이 많이 보였습니다.
열심히 공부하는 학생
샤프를 쥔 채 조는 학생
몰래 유튜브를 보고 있는 학생
그 공간에 있던 사람 모두가 저의 과거 모습과 겹쳐 보였습니다.
그렇게 익숙한 고향에 온 듯한 생각으로
오랜만에 각 잡고 공부를 하니 힘들더군요.
작년까지만 해도 하루에 열몇 시간을 공부했는데
이제는 하루에 3~4시간 집중하기도 어려웠습니다.
무엇보다 공부를 시작할 때 “이거 하나만 보고 해야지” 같은 보상 심리가 생겼습니다.
보상 심리의 문제점은 절대 거기서 안 멈춘다는 거죠.
결국 시간이 한참 흐르고서야 공부를 시작하는 제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오랜만에 공부하니 문득 작년 생각이 났습니다.
저는 칼럼 읽기를 좋아했는데요.
쉬는 시간이면 메가스터디 메인화면을 새로고침하며 새로운 칼럼이 올라왔는지 확인하곤 했죠.
지금으로부터 시간이 꽤 지났지만
아직도 마음속에 뚜렷하게 남아 있는 글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지금의 여러분이 부럽다'는 이야기였습니다.
처음 그 글을 읽었을 때는 도무지 마음에 와닿지 않았습니다.
이미 원하는 대학을 간 상황인데
하루하루 지치고 스트레스투성이인 그 치열한 떨림이 뭐가 부러울까?
그저 배부른 소리처럼 느껴졌습니다.
하지만 1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저는 그때 그 멘토님의 고백에 공감할 수 있었습니다.
2026년 올해, 대학생 신분으로 살며
긴장해본 일이 얼마나 있었나 싶습니다.
간혹 수업에서 발표해야 하는 순간이면 떨리곤 했지만
무언가 열정적으로 준비하는 과정에서 나오는 긴장과 초조함은 아니었습니다.
지금도 저는 여러 가지 목표를 향해 달려가고 있지만,
그 간절함은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많이 희석되었습니다.
여러분이 앞으로 살면서 오로지 ‘하나의 목표’에만 몰입할 수 있는 시기는 드물 겁니다.
각종 자격증, 고시와 같은 시험을 준비하는 시기가 올 수 있지만
그때는 지금처럼 모든 우선순위를 뒤로하고 공부에만 내 삶을 쏟아붓기 어려울 테니까요.
건강, 인간관계, 취미.
삶에서 중요한 가치를 잠시 내려둔 채,
오직 한 가지 목표만 바라보며 달리는
지금 이 순간의 그 치열한 떨림과 열정이 부럽습니다.
여러분이 지금 견디고 있는 불안과 고통의 무게가 결코 가볍다는 뜻은 아닙니다.
인생에서 가장 뜨거운 열정으로 하루하루를 묵묵히 보내고 있기에,
저는 지금의 여러분이 진심으로 부럽고, 또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을 만큼 대단해 보입니다.

저는 수험생 때 보름달이 뜨면 늘 소원을 빌곤 했는데요.
어제 스터디카페를 나서며 문득 올려다본 밤하늘에 보름달이 피었더군요.
아마 여러분이 수능 보기 전 마지막 보름달일 테죠.
오늘 밤엔 보름달을 보며 저마다의 소원을 비는 건 어떠세요?
#추신
다음 칼럼에서 EBS 연계 작두 타보겠습니다.
#오늘의 시 추천
나비와 광장 – 김규동
수능은 이항 대립이 있고(나비vs광장) 보편적인 소재(연약, 순수, 극복)가 나오는 시를 좋아합니다.
그런 점에서 수능에 출제될 수도 있는 시라고 생각하지만,
그와 별개로 내용이 묵직하고 깊이 있어 추천합니다.
흰나비는
또 한번 스스로의 신화와 더불어 대결하여 본다
이 구절 속 흰나비가 우리의 모습과 참 닮은 것 같네요.
현기증 나는 활주로의
최후의 절정에서 흰나비는
돌진의 방향을 잊어버리고
피 묻은 육체의 파편들을 굽어본다
기계처럼 작열한 심장을 축일
한 모금 샘물도 없는 허망한 광장에서
어린 나비의 안막을 차단하는 건
투명한 광선의 바다뿐이었기에-
진공의 해안에서처럼 과묵한 묘지 사이사이
숨 가쁜 제트기의 백선과 이동하는 계절 속-
불길처럼 일어나는 인광의 조수에 밀려
흰나비는 말없이 이즈러진 날개를 파닥거린다
하얀 미래의 어느 지점에
아름다운 영토는 기다리고 있는 것인가
푸르른 활주로의 어느 지표에
화려한 희망은 피고 있는 것일까
신도 기적도 이미
승천하여 버린 지 오랜 유역-
그 어느 마지막 종점을 향하여 흰나비는
또 한번 스스로의 신화와 더불어 대결하여 본다.
고려대
권기범 멘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