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의 내용이 나오는데! 궁금하지 않으시다면 넘겨도 됩니당 물론 읽어주신다면 고맙겠어요오…
옛날 옛날에…
바그다드에서 직물 거래를 하는 이븐 압바스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거래처 사람에게 보낼 선물을 찾고 있던 그는 시장에 새로 생긴 가게를 발견하고 들어갔습니다.
신기한 물건들로 가득한 가게 안을 둘러보는데, 상점 주인 바샤라트가 걸어나왔습니다.
“이곳을 찾아주시어 감사합니다. 찾으시는 물건이라도 있습니까? 여기 있는 물건들은 모두 제가 직접 만드는 것들입니다.”
가게 안에 있는 물건들이 흥미로웠던 압바스는 구석구석 둘러보며 바샤라트에게 물건의 쓰임과 원리에 대해 질문했고 바샤라트는 정성껏 답변해주었습니다.
가게 안쪽 깊숙한 방으로 들어선 압바스는 방 한가운데에 있는 연마된 금속으로 만들어진 원형의 문을 발견했습니다.
“이것은 제가 만든 세월의 문입니다. 이 문 양쪽은 이십 년의 세월로 분리되어 있습니다. 손님께서 원하신다면 이 문을 지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이십 년 뒤의 바그다드로 들어갈 수 있고 이십 년 뒤의 자신과 만나 대화도 할 수 있습니다. 그런 다음 다시 이 세월의 문을 지나 현재로 돌아올 수도 있죠.”
“이 문을 이용한 사람들이 있나요? 미래의 자신과 대화를 나눈 사람들은 무엇을 알아냈습니까?”
“제각기 다른 것을 알아내게 됩니다. 원하신다면 그중 한 사람의 이야기를 들려드리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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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운을 만난 밧줄 직공의 이야기
밧줄을 꼬아 살아가는 하산이라는 청년이 있었습니다.
하산은 이십 년 뒤의 카이로를 보려고 세월의 문을 통과했고, 발전한 도시를 구경하며 돌아다니다가 밧줄 직공 출신 유명한 거상인 하산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 되었습니다.
직업과 이름이 같은 것이 신기했던 하산은, 이 부유한 상인에 대해 수소문하여 그의 저택으로 찾아갔습니다.
화려하고 거대한 저택에서 하산은 나이 든 자신을 만났습니다.
“마침내 찾아왔군! 안 그래도 기다리고 있었네!” 나이 든 하산이 말했습니다.
“저를 기다렸다고요?“ 하산은 자신이 이곳에 올 것을 나이 든 하산이 어떻게 알고 있는 것인지 의아했습니다.
“물론이지. 자네가 지금 그러고 있는 것처럼 나도 나이 든 나 자신을 방문했거든. 자, 와서 저녁을 함께 먹지.”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고, 마침내 젊은 하산은 나이 든 하산에게 물었습니다.
“저는 가난한 밧줄 직공인데 어떻게 이렇게 운명을 크게 변화시킬 수 있었습니까?”
“지금 얘기해줄 수 있는 것은 이것뿐이네. 시장에 삼을 사러 가 검은 개의 거리를 걸을 땐, 평소처럼 남측을 따라 걷지 말게. 북측을 따라 걸어야 해. 그냥 내가 하라는 대로 해. 그리고 이제 집으로 돌아가게. 또 언제 나를 찾아와야 하는지는 시간이 흐르면 알 수 있을 걸세.”
젊은 하산은 다시 현재로 돌아와, 지시받은 대로 햇살을 피할 그늘이 없을 때조차 거리의 북측을 따라 걸었습니다. 며칠 뒤, 그는 거리 남측에서 미친 말이 마구 달리며 사람들을 걷어차는 광경을 목격했습니다. 야자유가 담긴 육중한 단지를 넘어뜨려 사람이 다치기도 했고, 어떤 사람을 짓밟기까지 했습니다.
다음 날 하산은 세월의 문을 지나 나이 든 자신에게 찾아갔습니다.
“그곳을 지날 때 말 때문에 사고를 당하셨습니까?”
“아니. 나이 든 나의 경고를 명심했거든. 잊지 말게. 자네와 나는 일심동체야. 자네에게 일어난 일은 모두 내게도 일어났던 일이지.”
이후에도 나이 든 하산의 지시를 따른 덕분에 많은 난관을 비켜 갈 수 있었습니다.
어느 날 나이 든 하산이 말했습니다.
“그럼 지금부터 자네에게 중요한 얘기를 하나 해주겠네. 말을 한 필 빌리게. 카이로 서쪽 구릉 지대의 어떤 장소로 가는 길을 가르쳐주지. 그곳 작은 숲속으로 들어가면 벼락 맞은 나무가 한 그루 있을 걸세. 그 나무 주변에서 자네가 움직일 수 있는 것 중 가장 무거워 보이는 바위를 찾아내 그 밑을 파보게.”
다음 날 하산은 문제의 나무를 찾아내 바위 밑을 팠고 금화와 보석이 가득 들어있는 청동 궤를 발견했습니다.
다음번에 나이 든 하산을 만났을 때 그는 말했습니다.
“우리가 말을 나누는 것은 이번이 마지막이야. 이제부터는 자네 힘으로 나아갈 길을 찾게. 평안이 함께 하길 바라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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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세월의 문을 이용하고 싶습니다. 사례비로 얼마를 드리면 되겠습니까?“ 바샤라트의 이야기를 들은 압바스가 말했습니다.
“통행료를 받지는 않습니다. 제 가게로 누가 올지는 운명의 뜻에 달렸고 저는 그 뜻에 따라 행동하는 것이죠.”
“그럼 저는 20년 뒤의 미래가 아니라 반대편으로 들어가 제 젊은 시절로 가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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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바스는 과거로 돌아가 사고로 잃은 아내를 구하고 싶었습니다.
다시 기회를 얻은 그는 원정을 마치고 빠르게 돌아가 아내를 사고로부터 구할 계획이었습니다.
바그다드로 돌아가는 대상이 그 달에 출발할 예정이어서 별문제 없이 시간에 맞춰 합류할 수 있다는 생각에 압바스는 안도했습니다.
그러나 출발하고 몇 주 지나지 않아 그는 자신의 운명을 저주하게 되었습니다.
원정을 호위하는 병사들이 병에 걸려 그들이 회복할 때까지 몇 주나 기다려야 했으며, 모래폭풍을 만나면서 체류 기간이 늘어 여정이 끊임없이 지체됐기 때문입니다.
시간에 맞춰 도착해 아내를 구해야 하는 압바스는 턱도 없이 비싼 가격을 지불하고 낙타 한 마리를 사 혼자 길을 나섰습니다.
속도를 높여 바그다드로 향했지만 도적 떼를 만나 돈의 전부와 낙타를 빼앗겼고 그는 다시 돌아가 원정에 합류해야 했습니다.
시간이 지나 원정대가 바그다드에 도착했을 때, 압바스는 이미 늦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성문을 통과하자마자 근처에 있는 위병들에게 모스크가 무너지는 사고 얘기를 듣지 못했냐고 물었습니다.
처음 위병이 듣지 못했다고 대답하자, 압바스는 본인이 사고 날짜를 잘못 기억하고 있었고 그래서 실은 늦기 전에 도착한 것은 아닌가 하는 희망이 솟았습니다.
그러나 다른 위병이 나타나 어제 모스크가 무너지는 사고가 있었다고 말했고 압바스는 그토록 먼 여정 끝에서 제 생애 최악의 소식을 또다시 들어야 했습니다.
압바스는 모스크까지 걸어가 벽이 서 있던 자리에 내려앉은 벽돌 더미를 보았고, 20년 동안 꿈속에서 자신을 괴롭히던 광경을 다시 마주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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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무엇도 과거를 지울 수는 없습니다. 과거로의 제 여행은 아무것도 바꾸지 못했지만, 그곳에서 제가 배운 것은 모든 것을 바꿔 놓았습니다.”
테드 창 작가님의 [숨]이라는 소설을 요약, 재구성해서 가져왔습니다!
과거 혹은 미래로 가는 시간 여행, 다들 한 번쯤 상상해보지 않으셨나요?
저는 이런 상상을 할 때마다 과거로 돌아가 제가 했던 선택이나 일들을 바꾸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살면서 마주치는 수많은 선택의 기로에서 결정을 해야 하는 순간들이 있잖아요.
그리고 그 결정이 항상 좋은 결과를 가져오는 것이 아니고요.
그럴 때마다 ‘그때 그러지 말걸, 다른 걸 고를걸‘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면서 아쉬움으로 남게 되죠.
사람은 참 많은 후회를 안고 살아가는 것 같습니다.
특히 수험생 시기에는 그런 후회가 더욱 크게 느껴지는 것 같아요.
시험을 보고 나서 답을 맞춰보며 계산 실수 하나를 발견했을 때,
‘이것만 안 틀렸으면 등급이 달라졌을 텐데.’
헷갈리는 두 선지를 한참 고민하다가 내가 고른 것과 반대되는 선지가 정답이었을 때,
‘처음 생각했던 걸 고를걸.’
시험이 끝난 뒤에는 이런 사소한 실수 하나하나가 유난히 크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조금 더 일찍 공부를 시작했더라면,
그때 그 시간을 허비하지 않았더라면,
현역 때 조금 더 열심히 준비했더라면.
이미 지나간 일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자꾸만 과거를 돌아보게 됩니다.
저 역시 수험생활을 하면서 이런 후회를 정말 많이 했습니다.
저는 현역 때 수능을 제대로 준비하지 못했습니다.
당시에는 내신을 챙기는 데 더 많은 시간을 쏟았고, 수능 공부는 충분히 하지 못한 채 시험을 보게 되었습니다.
‘이 정도면 최저는 맞추겠지.’
어쩌면 그때의 저는 조금 안일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저는 제가 지원했던 대학들의 최저를 맞추지 못했고, 결국 불합격이라는 결과를 받아들여야 했습니다.
학교에 합격하지 못했다는 사실도 물론 슬펐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더 크게 남은 것은 다른 종류의 아쉬움이었습니다.
‘내가 조금만 더 제대로 준비했더라면.’
‘그때 조금만 더 열심히 공부했더라면.’
‘왜 그때는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을까.’
합격하지 못한 결과보다, 그 결과를 받아들여야 하는 지금의 내가 스스로에게 떳떳하지 못하다는 사실이 더 힘들었습니다.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했는데도 안 된 것’과 ‘할 수 있었는데 하지 않은 것’에서 오는 후회는 조금 다른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재수를 결심했습니다.
그런데 재수를 시작했다고 해서 불안과 걱정이 모두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공부를 하면서도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번에도 최저를 못 맞추면 어떡하지?’
‘열심히 했는데 또 원하는 대학에 가지 못하면 어떡하지?’
‘그러면 나는 또 지난 시간을 후회하게 되지 않을까?’
미래에 대한 걱정은 계속해서 생겼습니다.
하지만 걱정은 걱정을 불러올 뿐, 해결책을 제시해주진 않았습니다.
합격할 수 있을지 없을지는 지금 당장 알 수 없었습니다.
아무리 불안해해도 결과를 미리 확인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고요.
그렇다면 할 수 있는 것은 결국 하나뿐이었습니다.
결과를 걱정하는 대신, 결과를 후회하지 않도록 지금 할 수 있는 것을 하는 것.
그래서 저는 재수를 하면서 스스로에게 한 가지 약속을 했습니다.
‘나중에 어떤 결과를 받더라도 후회와 미련은 남기지 말자.’
물론 여기서 말하는 ‘후회하지 말자’는 것이 결과에 대해 아무런 아쉬움도 느끼지 말자는 뜻은 아니었습니다.
사람인 이상 원하는 대학에 떨어졌다면 당연히 속상할 것이고, 시험에서 실수한 문제가 있다면 아쉬울 것입니다.
다만 적어도 결과를 받아든 순간,
‘나는 정말 할 만큼 했다.’
라고 스스로에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습니다.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공부했고,
내가 부족한 부분을 외면하지 않았고,
할 수 있었는데도 하지 않은 일은 없도록 해보자.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만약 그렇게까지 했는데도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한다면, 그때는 정말 운명이라고 생각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다 했는데도 안 된 거라면 어쩔 수 없지.’
그렇게 생각할 수 있을 만큼, 아쉬움이 남지 않도록 공부해보자는 것이었습니다.
신기하게도 그런 생각을 하고 나니 오히려 마음이 조금 편해졌습니다.
돌이켜보면 수험생활에서 후회를 완전히 없애는 것은 불가능한 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시험이 끝난 뒤에는 누구나 한두 문제쯤 아쉬움이 남을 것이고,
수능이 끝난 뒤에는 ‘조금만 더 할걸’이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습니다.
지난 시간을 돌아보며 아쉬워하는 마음 자체가 잘못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그 후회가 오늘의 나를 붙잡아 두게 하지는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과거의 나에게 계속해서
‘왜 그렇게 했어?’
‘왜 더 열심히 하지 않았어?’
라고 묻는다고 해서 지나간 시간이 돌아오는 것은 아니니까요.
오히려 과거의 나에게서 한 걸음 떨어져서,
‘그때 내가 부족했던 것은 무엇이었지?’
‘다시는 같은 후회를 하지 않으려면 지금 무엇을 해야 하지?’
라고 물어보는 것이 더 중요하지 않을까요?
계산 실수를 했다면 다음에는 같은 실수를 줄이면 되고,
선지 판단을 잘못했다면 내가 어떤 생각의 과정에서 흔들렸는지 돌아보면 됩니다.
공부를 미뤘던 시간이 후회된다면 지금부터 조금 더 충실하게 보내면 되고,
저처럼 현역 때 충분히 준비하지 못했다는 후회 때문에 다시 공부하고 있다면 그 후회를 이번 수험생활의 원동력으로 바꾸면 됩니다.
후회는 과거를 바꾸기 위해 하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의 나를 바꾸기 위해 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숨」에서 압바스는 과거로 돌아갔지만 결국 자신이 원했던 과거를 바꾸지는 못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말합니다.
“과거로의 제 여행은 아무것도 바꾸지 못했지만, 그곳에서 제가 배운 것은 모든 것을 바꿔 놓았습니다.”
저는 이 문장이 이 이야기가 전하고자 하는 가장 중요한 메시지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과거로 돌아갈 수는 없습니다.
이미 지나간 시험으로 돌아가 답을 다시 고를 수도 없고,
지난 몇 달의 시간을 다시 가져올 수도 없습니다.
하지만 과거의 경험을 통해 앞으로의 선택을 바꾸는 것은 가능합니다.
그리고 어쩌면 그것으로 충분할지도 모릅니다.
이제 수능이 약 100일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칼럼을 올리는 시점에서는 95일이겠지만요…!!)
아마 지금쯤이면 이런 생각을 하는 분들도 있을 것 같습니다.
‘수능이 200일 정도 남았더라면 좋겠다.’
지금까지 지나온 시간이 아쉽게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조금 더 흘러 수능이 50일 앞으로 다가오면 어떨까요?
그때의 나는 아마 이렇게 생각할지도 모릅니다.
‘수능이 100일 남았을 때로 돌아갈 수 있다면 좋겠다.’
그렇다면 지금의 우리는 어떨까요?
바로 그 D-100의 시간에 서 있습니다.
어쩌면 미래의 내가 가장 간절하게 돌아오고 싶어 할 시간이 바로 지금일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우리는 지금 가진 시간을 바라보며 또다시 과거를 아쉬워하고 있습니다.
참 아이러니하지 않나요?
언젠가는 간절하게 돌아오고 싶어 할 오늘을, 우리는 지나간 시간을 후회하느라 놓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100일이라는 시간을 한꺼번에 바라보면 막막하고 조급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100일을 한꺼번에 살아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오늘 하루를 보내고,
내일 하루를 보내고,
그렇게 하루하루를 쌓아가면 됩니다.
오늘 해야 할 공부를 하고,
오늘 틀린 문제를 다시 보고,
오늘 부족했던 부분을 하나 채우고,
오늘의 나에게 주어진 하루를 충실하게 보내는 것.
그렇게 하루를 쌓아가다 보면 어느새 수능 날이 찾아와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날 시험지를 내려놓았을 때,
결과가 어떻든 스스로에게 이렇게 말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나는 정말 할 만큼 했다.’
물론 그렇게 노력한다고 해서 원하는 결과가 반드시 보장되는 것은 아닙니다.
열심히 했다고 해서 모든 사람이 원하는 대학에 합격하는 것도 아니고, 시험에서 실수를 전혀 하지 않게 되는 것도 아닙니다.
그래서 ‘열심히 하면 무조건 원하는 결과를 얻을 수 있다’고 이야기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고 생각해요.
내가 결과를 결정할 수는 없어도, 결과를 받아들이는 나의 마음가짐은 조금 다르게 만들 수 있습니다.
최선을 다한 사람에게도 아쉬움은 남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아쉬움 속에서도
‘그래도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만큼은 했다.’
라고 말할 수 있다면,
그 후회는 우리를 무너뜨리는 후회와는 조금 다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아직 우리의 이야기는 끝나지 않았습니다.
지금의 시간을 후회 없이 채워나갔으면 좋겠습니다.
어쩌면 미래의 내가 가장 부러워할 시간은 지금일지도 모르까요.
궁금한 점들이 있다면 언제든 물어봐주세요!!
공부 이야기도, 고민 상담도 뭐든 좋습니다!!
그럼 오늘도 여러분들 모두의 하루가 무탈하길 바라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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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몫을 하자
당장 오늘 하루는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보일지 몰라도
하나하나 차곡히 쌓이면
생각지도 못한 힘을 만들어 내기도 한다.
오늘도 이 하루의 힘을 믿으며 하나씩 쌓고 있는 중이다.
오늘 내 손이 닿을 수 있는 것부터 조바심 내지 않고 하기.
바리수 < 이젠 네가 피어날 차례야>
단국대
이송현 멘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