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가캠페인

[학습법] 머리에서 가슴까지 30cm

성균관대학교 교육학과 구은빈 마스터
등록일 :
2023.11.10
|
조회 :
20,060
안녕하세요!

날이 정말 많이 추워졌습니다.

가을은 순식간에 자취를 감추고

순식간에 겨울이 온 듯합니다.

갑작스러운 기온차에 부디 여러분 모두

감기 조심하시기를 바라겠습니다.

오늘은 윤리 과목 칼럼이 아니라

일반 칼럼을 들고 왔습니다.

저는 매년 일반 칼럼을 하나씩 써 왔는데요.

이번 칼럼만큼은

여러분께 너무 무거운 글이 되기보다는

조금은 가벼운,

당연하다고 믿어 왔던 생각들을

조금 전환할 수 있는 계기의 글 정도가

되기를 바라겠습니다.



여러분은 혹시 시를 좋아하시나요?

저는 개인적으로 시를 매우 좋아합니다.

시를 읽는 것도 좋아하고, 시를 쓰는 것도 좋아합니다.

제가 가장 좋아하는 시인 선생님은

올해 연계 교재에도 작품이 실려 있고

또 아마 유명하셔서 여러분께서도 익히 아시고 계실

정호승 선생님이십니다.

제가 감히 정호승 선생님의 시가 어떻다고

평가할 자격이 되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적어도 저의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정호승 선생님의 시야말로

일상에서 쉽게 지나칠 수도 있는 사소함을

놓치지 않도록 해 주시고

여린 것을 강하고 단단하게 만들어 주시는

엄청난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정호승 선생님의 시 중 가장 좋아하는 시를 꼽기에는

너무 좋은 시가 많아서 상당히 어렵지만

개인적으로 상당히 인상 깊게 읽은 시가 하나 있습니다.





겨울이 오자

풀잎들이 서둘러 사후 시신기증서를 써서 내게 전해준다

시든 꽃잎들도 사후 각막기증서를 써서 어머니에게 전해준다

나도 잎을 다 떨군 겨울나무들에게 사후 시신기증서를 써서 건네준다

봄이 오자 어머니도 김수환 추기경처럼

사랑이 머리에서 가슴까지 내려오는 데 칠십년 걸렸다고 하시면서

산수유에게 사후 장기기증서를 써서 건네주고

휠체어에 앉아 고요히 미소 지으신다





저는 이 시에서

‘사랑이 머리에서 가슴까지 내려오는 데 칠십년 걸렸다고 하시면서’

이 문장에 감명을 받았습니다.

이 문장은 시에도 나와 있듯

김수환 추기경의 말씀으로 유명한 문장이기도 합니다.

“사랑이 머리에서 가슴까지 내려오는 데 칠십 년이 걸렸다.”

머리로는 사람들을 사랑해야 한다는 것을

진작에 알면서도

진짜 가슴으로, 즉 진정으로 사람들을 사랑하기까지는

약 70년의 세월이 걸렸다는 뜻이지요.

그런데 머리에서 가슴까지 내려오는 데 

상당히 오랜 시간이 걸리는 것은

비단 사랑뿐만이 아닌 것 같습니다.

우리는 머리로는 이미 알고 있는데

가슴으로는 받아 들일 수 없는 현상을

종종 겪고는 합니다.

예컨대 저는 20대 초반의 나이에

이런저런 일을 몇 번 겪어 보고는

이제야 알겠다며,

삶은 원래 고통으로 가득한 것이고

그 고통은 그냥 흘려보내면 되는 것이라고 생각하며,

마침내 삶의 진리를 체득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하여 앞으로는 어떤 힘든 일을 또 겪게 되더라도

그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그냥 흘려보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저때 체득한 진리도, 길이 많이 막히는지,

한참 전에 머리에서 출발한 것 같은데

아직 가슴에 도착하기까지는 한참 남은 것 같습니다.

매번 힘든 일이 생길 때마다

머리로는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하면서도

가슴으로는 현실을 차마 받아들이지 못해

울분을 토해내고 서러워 하다가

가슴이 지쳤을 무렵에야 체념하게 됩니다.

사실 여러분께서도 이미 다 아시고 계실 것입니다.

삶을 살아 가는 이상

힘든 일과 불행을 아예 피할 수는 없다는 것,

지금처럼 수능날이 얼마 남지 않아

괴롭고 초조하고 불안하고 우울하고 피곤한 와중에도

억지로 공부를 해야 하듯

몸과 마음이 한계에 부딪힌 상황에서도

끊임없이 나의 능력을 시험하는

그와 같은 순간들에 놓이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요.

이성적으로 잘 생각해 보면

이와 같은 사실이 당연해 보이기까지 합니다.

하지만 머리로는 이미 받아들인지 오래일지라도

이것이 가슴까지 내려오지를 않았으니

공부를 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하지 않게 되고

마음을 비워야 한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끊임없이 무언가에 매달리게 됩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머리에서 가슴까지 깨달음이 내려가는 데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많은 것이 필요하겠지만

가장 필요한 것은 바로 시간입니다.

깨달음이 머리에서 가슴까지 내려가도록 하는 데

가장 필요한 것은

다른 것이 아니라 바로 시간입니다.



시간은 참 매력적인 개념입니다.

시간은 끊임없이 흐릅니다.

시간은 모두에게 공평합니다.

내가 행복하고 남은 불행할 때에도 시간은 흐르고

내가 괴롭고 세상은 마냥 평화로울 때도 시간은 흐릅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어도 따뜻한 봄은 매년 찾아옵니다.

그리고 그렇게 시간이 흐르는 과정에서

우리는 많은 것을 얻었다가 잃으면서 살아 가게 됩니다.

그 과정에서 수많은 과거의 감정과 기억이 흐려지고

다시 수많은 새로운 경험과 추억이 탄생합니다.

시간은 우리의 삶을 언제 어디서나 휘감고 있습니다.

그야말로 정신없는 시간의 소용돌이 속에서

저는 그 시간의 힘을 한번 믿어 보시라고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시간의 힘을 믿는다는 것.

그것은 과연 무엇일까요.

옛날 말들 중 유명한 말로

“시간이 약이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 말이 정말로 맞는지는 모르겠습니다.

가만히 있으면 시간이 와서

우리의 상처를 알아서 치유해 주는 것이 아닙니다.

흐르는 시간 속에서

이 모든 것이 다 지나 갈 것이라고

시간의 힘을 믿는 사람이

그 시간의 힘을 이용하여

직접 자신의 상처를 치유해 나가는 것입니다.

물론 그렇게 시간의 힘을 믿으며

앞으로 나아가는 과정에서 우리는 또

다양한 고통을 겪게 됩니다.

무수한 고통을 겪으면서

우리는 더욱 강해지는 것만 같습니다.

흔히 고통을 겪으면 겪을수록

사람이 더욱 강해진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고통을 겪으면서 강해진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마음에는 원래부터, 아니 태초부터

그 고통을 견뎌낼 수 있는 힘이 있었습니다.

그것을 원래는 모르다가

고통을 겪으면서 비로소 확인하게 된 것입니다.

원래부터 강했으나 모르고 있다가

고통을 겪으면서 알게 된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에는 본래 고통을 견뎌낼 수 있는 힘이 있습니다.

그냥 버티면 되는 것입니다.

버티는 일에 특별한 비결이 존재하는 것은 아닙니다.

정말로 ‘그냥’ 버티면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버티는 과정에서

반드시 근사하고 위대한 업적을 남겨야 하는 것도 아닙니다.

수능날까지 일주일도 안 남은 시점에서

우울하고 짜증이 나 죽겠는데

어김없이 새벽 6시에 기상해서

그 어떠한 잡념과 감정도 없이

총 공부 시간 18시간을 달성해야 하는 것이 아닙니다.

눈물이 나오면 나오는 대로,

졸리면 조금씩 쪽잠도 자 가면서,

하지만 결코 나의 하루를 내던지지는 않고

고통의 순간들 속에서도

그 순간에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며

시간은 어차피 흘러가므로

어차피 이 모든 것도 끝이 나므로

그렇게 시간의 힘을 믿으면서

매 순간을 버티면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이 마음처럼 잘 되지 않는 것은

어쩌면 과거의 몇 번의 경험을 통해 이미 맛본

실패와 낙심의 경험,

그리고 그로 인해 생겨 난

나와 나의 미래에 대한 불신 때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사실 지난 과거가 너무나도 후회되었던 적이

한두번이 아니지요.

그것은 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효과적인 생존을 위해서라도

과거의 일을 바탕으로 미래의 상황을 개선하려고 하는 것은

인간의 필연적인 본능이라고 했습니다.

이렇게만 생각해 보아도

정말 단 하나의 후회도 하지 않는 사람이

이 세상에 있을 수 있을까요.

그러나 잘 생각해 보면

그것이 그 당시의 나에게는 최선이었을 것입니다.

아무것도 모르는 채로 다시 그때로 돌아 갔을 때

과연 그때의 나는

똑같은 선택을 내리지 않을 수 있을까요?

그때까지의 삶을 살아 온 나에게

그때와 같은 상황이 주어지고

그때와 같은 가치관과 그때와 같은 마음으로

다른 선택을 내릴 수는 없었습니다.

그 선택은 나의 삶에서 필연적인 일이었고

동시에 그렇기 때문에

나의 삶에 반드시 일어나야만 하는,

즉 나의 삶에 반드시 필요한 일이었습니다.

이처럼 그럴 수밖에 없었고

또한 그래야만 했는데

그 선택을 가지고 끊임없이 후회하며

과거의 나를 닦달할 뿐만 아니라

현재의 나까지 증오하는 것은

솔직히 나에 대한 자기기만밖에 되지 않습니다.

네, 저는 후회도 기만의 일종이라고 생각합니다.

과거의 일에 지나치게 후회하는 것은

그때로 다시 돌아가면

똑같은 선택을 내리지 않을 것이라는 자만심,

지금의 내가 그때의 나보다 많은 것을 알고 있으니

지금의 나에게는 그때의 나를

비난하고 매도할 권리 역시 주어진다는

오만감에서 비롯되는

자기기만의 일종입니다.

적당한 성찰과 반성을 통해 교훈을 얻으시고

그것을 바탕으로 미래를 개선하시는 것 정도는 괜찮지만

어쨌든 그 당시에는 그럴 수밖에 없었던 과거의 자신을

이제 그만 용서하시기를 바랍니다.



사실 머리에서 가슴까지의 거리는 

약 30cm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성인 남성 기준 한 보폭 정도밖에 되지 않는 거리인데

우리는 살면서 수많은 보폭을 아무렇지 않게 내딛으면서도

또 이곳으로 갔다가 저곳으로 갔다가 하면서도

정작 우리의 마음과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머리와 가슴 사이의 한 보폭 정도 되는 거리는

차마 완전히 내딛지 못해서

늘 아파하고 힘들어 합니다.

하지만 정말로 그것이

고작 한 보폭의 발걸음으로

해결될 수 있는 일이었다면

우리는 바쁘게 달리던 걸음을 멈추고

잠깐 뒤돌아 봅니다.

나의 지금까지의 삶과

나의 가장 최근 모습을 돌이켜 봅니다.

내가 나아가고 싶은 방향과

 나의 미래도 함께 생각해 봅니다.

모든 것은 흘러갑니다.

시간의 힘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저는 20살에

서울역에서 노숙을 하기도 하고

매일같이 길거리를 배회하며 울었으며

저의 삶을 저 스스로 몇 번이나 내던지려고 했으나

지금은 그때의 일을 그래도 조금은 웃으면서 

떠올릴 수 있습니다.

그 당시에는 시간의 힘을 완전히 믿지는 못했으나

그냥 무작정 버티면서

어렴풋하게 시간의 힘을 체감하고

조금씩 시간의 힘을 믿기 시작했습니다.

시간은 모두에게 공평합니다.

그토록 비참했던 20살의 저에게도

결국 시간은 흐르고 모든 것은 변화한다는

축복이 주어졌습니다.

여러분에게라고 어찌 그러지 않겠습니까?

시간의 힘을 믿으시고,

과거의 나는 이제 그만 놓아 주시고,

그리고 그냥 버티십시오.

이 추운 겨울도 지나고

결국 내년의 봄은 올 것이고

내년의 봄이 와도

결국 내년의 추운 겨울은 또 다시 오겠습니다만

봄에 쌓은 행복한 추억으로

매섭게 추운 겨울을 견딜 수 있을 것이고

어느 순간부터는

어차피 언젠가는 봄이 다시 올 것이라는 생각에

추운 겨울도 그렇게 힘들지 않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이제는 겨울의 추위마저 낭만적으로 보이는

그런 날이 올 것입니다.

무수한 괴로움 속에서도 시간의 힘을 믿으며

묵묵하게 버틸 수 있다면,

그때야말로 바로 삶에 대한 깨달음이

머리에서 내려가 가슴에 도달한 순간이겠습니다.

제가 하고 싶은 말은 여기까지이고

나머지는 여러분의 몫입니다.

아시는 분은 이미 아시겠지만 

저는 일반 칼럼에는 댓글을 달지 않으므로

댓글은 편하신 대로 써 주세요.

무엇이든 좋습니다.

저는 이따가 저녁 시간이 되면 파이널 자료를 들고

다시 조용히 찾아 오겠습니다. 

오늘 하루도 모두 파이팅하시기를 바라겠습니다.

여러분의 삶을 진심으로 응원합니다.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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