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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습법] 동아사입문 29. 폭주와 패망

한국교원대학교 역사교육과 전의찬 마스터
등록일 :
2021.04.19
|
조회 :
2,838
※이번 글은 많이 깁니다. 읽기 전에 마음의 준비를 해주세요.

안녕하세요. 한국교원대학교 역사교육과 전의찬입니다.

 저번 시간에는 일본의 근대에 대해 다루었습니다. 미국의 압력을 인해 개항한 에도막부는 존황양이로 무장한 젊은 무사들에 의해 무너지고, 일본은 메이지유신, 자유민권운동을 거치면서 정치사회적 근대화를 이루었다 하였습니다. 이후 청일전쟁, 러일전쟁을 통해 조선을 식민지로 만들었다 하였습니다.

 여기까지만 보았을 때 일본은 성공한 근대국가인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그 구조는 상당히 비정상적이었습니다. 대표적으로 ‘천황의 존재’가 그러하였습니다. 칼럼을 쭉 보아왔다면 알겠지만 천황은 죠큐의 난 이후로 사실상 모든 지배력을 상실한, 왕이라기보다는 차라리 제사장이라고 생각될 정도로 실질적 권력이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이러니 민중들 중에서는 천황의 존재 자체를 모르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근대화를 위해서는 많은 주장들과 세력들을 하나로 모을 필요가 있었고, 그 대상으로 천황이 선택되어 몇 백년 만에 다시 나라의 지배자가 된 것이었습니다. 문제는 여기에 있었습니다. 우리가 흔히 나라의 시조를 생각해보면 조선의 이성계, 고려의 왕건, 청의 누르하치, 명의 주원장, 몽골의 칭기즈칸… 모두 걸출한 능력을 가지고 난세를 평정한 사람들입니다. 근데 사실상 새로운 일본을 건국한 메이지 천황은요? 그가 나라를 세우는 데 한 일이 뭐가 있지요? 이러니 누가 천황을 새 왕으로 인정하겠느냔 말입니다.

 그래서 천황을 지배자로 등극시킨 유신지사(維新志士, 메이지 유신을 일으킨 무사)들은 “천황이 갑툭튀인 것 같지만 사실은 우리의 위대한 황제야”라고 민중들을 세뇌시킬 필요가 있었습니다. 그 때 나오는 것들이 ‘교육칙어(?育勅語)’ 등인데, 그 내용은 ’천황이 너희의 진정한 지배자고, 그를 위해 열심히 공부해야 한다’라고 되어있습니다. 또한 전 시간에 말한 대일본제국 헌법에도 “천황은 만세일계의 천황이 통치한다(1조)”, “천황은 신성하여 침해할 수 없다(3조)” 등의 내용을 넣어 천황의 지배를 억지로 정당화시키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근데 일본 인구 1억이 다 바보도 아니고 특별한 능력도 없는 천황을 왕으로 인정 안 하는 사람이 당연히 있었습니다. 아니, 아예 군주제 자체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사람들도 있었지요. 그리고 일본 정부는 이런 움직임을 강력히 탄압하는 것입니다. 대표적으로 1910년에 천황을 암살하려던 사건이 발생했는데, 사회주의자의 대표격인 코토쿠 슈스이를 억지로 사건에 연루시켜 사형시킨 일이 있습니다. 자유주의, 계몽주의를 기반으로 탄생한 것이 바로 서양의 근대인데, 근대화를 했다는 나라가 자유와 계몽과는 거리가 먼 행동을 하니 모순이 안 생길 수가 없는 것입니다.

 동양임에도 거의 유일하게 근대화를 성공시킨 나라. 그러나 그 안에는 천황이라는 비상식적인 존재가 있음으로써 근대화와는 어울리지 않는 억지와 세뇌, 폭력이 생겼고, 그것은 일본의 폭주로 이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근대화 정부는 세워진 지 아직 50년 밖에 되지 않았고, 민중을 폭력으로 다스리기에는 지지 기반이 부족한 상태였습니다. 그래서 아직은 비정상적인 정치에 저항할 수 있었습니다. 1912년, 카츠라-태프트 밀약으로 잘 알려진 카츠라 타로(桂太?)가 육군세력의 힘을 이용하여 총리의 자리에 오르는 일이 발생합니다. 이에 야당 정치인을 비롯하여 많은 사람들이 저건 아니라며 격렬히 시위하기에 이르렀고, 카츠라 타로는 결국 100일도 안 돼서 총리에서 사퇴하였습니다. 이 사건을 ‘제1차 호헌운동’이라고 부르며, 앞으로 전개되는 ‘타이쇼 데모크라시’의 시작으로 평가받습니다.

 타이쇼 데모크라시란, 타이쇼 시대에 일어난 민주주의 운동을 일컫는 말로, 타이쇼 천황이 재위하던 1912년부터 1926년 사이에 민주주의 열풍이 분 것을 지칭하는 것입니다. 자유민권운동으로 이미 한 차례 성과를 얻었을텐데, 왜 민중은 다시 일어난 것일까요? 그 이유는 러일전쟁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일본이 러일전쟁을 생각보다 손쉽게 이기긴 했지만, 어쨌든 강대국과 상대했기 때문에 많은 군비를 쏟아부었고 그 돈은 모두 민중의 돈을 짜내서 이루어진 것이었습니다. 근데 러일전쟁에서 승리하고 맺은 포츠머스 조약에서는 배상금 얘기가 일절 없었던 것입니다.

 예전 청일전쟁 때 막대한 배상금으로 돈맛 좀 본 일본 국민들은 이번에도 힘들게 노력한 만큼 돈이 들어오겠지 했는데, 돈은 한푼도 못 받고 과도한 세금만 납부하니 아주 빡치는 겁니다. 이런 와중에 정치판은 사츠마 번, 쵸슈 번 세력을 중심으로 그들만의 정치를 하고 있으니 화가 날 수밖에 없지요. 게다가 당시에는 부유한 소수 국민만 투표권이 있었기에, 전쟁을 위한 세금은 일반 국민이 다 내고, 전쟁을 결정하는 정치판에는 일절 관여할 수가 없는 괴상한 상황이 연출되었던 것입니다.

  그래도 일본은 국민의 요구보다는 여전히 대외팽창에 주력하였습니다. 1914년 유럽에서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일본은 영일동맹을 들먹이며 영국과 전쟁 중인 독일을 공격합니다. 아니 독일하고 일본이 엄청 떨어져 있는데 어떻게 공격을 하지 싶을텐데, 사실 독일 본토를 공격한 게 아니라 중국한테서 빌려서 군항으로 쓰고 있던 칭다오와 남태평양의 독일 식민지를 공격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사실상 전쟁에 도움은 1도 안 되고 그냥 팽창 욕심을 채울 뿐이었지요.

 청일전쟁, 러일전쟁, 그리고 제1차 세계대전...겉보기에는 일본제국의 성장이 눈부셔 보였지만, 군대 비용은 모두 민중에게서 착취한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민중이 고통받는 와중에도 러시아에서 내전이 발생하자 거기서도 또 한탕 해먹으려고 시베리아로 군대를 보냅니다. 이러한 끝없는 착취 끝에 결국 쌀값이 폭등하게 되었고, 투표권 없는 가난한 국민들은 마침내 들고 일어나 경찰서 등을 파괴하고 다니기에 이르렀습니다. 이를 ‘쌀소동’이라고 부릅니다. 참고로 한국사에 나오는 산미증식계획이 이 사태 때문에 시작된 것이지요.

 쌀소동으로 민심이 험악해진 데다가, 제1차 세계대전에서 중국을 압박해서 얻은 이권을 세계적으로 비난받은 끝에 다시 반환하게 되면서 일본의 대외팽창이 사실상 멈추게 됩니다. 이에 일본 내적으로 에너지가 집중되면서 앞서 언급한 ‘타이쇼 데모크라시’가 본격화되는 것입니다.

 쌀소동으로 일어난 민주화 운동인 만큼, 운동의 중심에는 빈민층, 농민, 노동자 등 무산계급(재산이 없는 계급)이 있었고, 그들을 대변하는 이념이 바로 사회주의, 공산주의였습니다. 그래서 이 즈음에 사회운동이 활발히 일어나게 되고, 이 흐름을 타서 조선에서도 노동쟁의, 소작쟁의 등이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물론 쌀소동의 문제 뿐만 아니라 러시아에서 최초의 공산국가인 소비에트 연방(소련)이 세워진 것이 큰 영향을 미치긴 했습니다.

 이런 와중에도 정치권은 여전히 귀족 세력을 중심으로 하여 자기들만의 정치를 하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이에 민중들은 정당을 통한 정치를 하라며 시위를 진행하는 한편 무산계급에도 투표권을 달라고 주장하게 됩니다. 이것이 제2차 호헌운동인데, 이 운동은 성공하여 운동을 주도한 정당들이 내각을 형성하게 됩니다. 이 내각은 자신들을 지지했던 민중을 위하여 재산에 상관 없이 만 25세 이상에게 모두 투표권을 주는 보통선거법을 제정하게 됩니다.

 하지만 한편으로 일본은 천황이 있는 이상 보수 우파의 길을 벗어날 수 없었고, 결국 보통선거법이 제정되는 동시에 사회공산주의를 탄압하는 ‘치안유지법’을 제정하게 됩니다. 이 법으로 인해 모든 공산주의 단체가 불법화 되었으며, 극심한 탄압 끝에 사회운동은 사그라들게 됩니다. 한국사에서도 이 여파를 겪어서, 신간회 해소 이후 눈에 띄는 사회운동이 없어지게 됩니다.

 비록 보통선거법의 제정이 이루어졌지만, 치안유지법이 제정되고 노동자의 권리가 탄압되는 등 반쪽자리 성공을 거둔 타이쇼 데모크라시는, 타이쇼 천황이 사망하고 세계 전체적으로 큰 사건이 터지면서 완전히 막을 내리게 됩니다. 그 큰 사건은 바로 대공황이었습니다. 아마 워낙 유명해서 익히 들으셨겠지만, 대공황은 미국의 주가 폭락으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당시 미국은 제1차 세계대전으로 폐허가 된 유럽의 복구를 지원하면서 엄청난 성장을 했는데, 그 때 무턱대고 찍어낸 상품들이 더이상 팔리지 않게 되면서 주가가 폭락한 것이었습니다. 전세계적으로 경제를 장악하고 있던 미국이 무너지자 강대국인 유럽과 일본도 함께 무너지게 됩니다.

 일본은 대공황이 있기 2년 전에도 경제 불황으로 뒤숭숭한 상황이었는데, 대공황까지 겹치자 현실을 도피하여 국뽕으로 빠져들게 됩니다. 옹기종기 모여 앉아서 회의나 하고 있는 정치인들은 유약해보이고, 천황의 신령한 힘으로 전 세계를 제패해가는 그런 망상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사실 일본 정치에 대공황을 탈출시킬 만한 정치인도 없긴 했지만, 대공황 자체가 워낙 거대한 흐름이라서 어차피 막을 수가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럼에도 피가 끓는 청년들, 특히 군인들은 “정치인이 무능해서 우리 위대한 대일본제국을 망치고 있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 결과 군대를 중심으로 갖가지 정신나간 짓이 자행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그 시작은 만주를 공격하는 것으로 시작되었습니다. 당시 만주에는 일본이 만든 철도를 보호하기 위한 ‘관동군’이라는 군대가 있었습니다. 근데 관동군의 젊은 장교들이 나라의 허락도 없이 자기 멋대로 일본 철도를 폭파시킨 뒤, 중국의 소행이라면서 만주를 점거해버리기에 이릅니다. 이를 ‘만주사변’이라고 부릅니다.

 근데 여기까지는 그럴 수 있다 치는데, 관동군 애들이 “우리는 천황폐하의 충성된 황국 신민으로서 한 것이다”라고 하니까 정치인들이 말리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천황은 당시 신성불가침이라 천황을 위해서 했다 하니까 뭐라 말을 못하는 거죠. 여기서 사실 천황이 뭐라 했었으면 그 애들 다 사형 때릴 수 있었는데, 이런 것을 묵인했다는 점에서 천황도 전쟁 범죄 혐의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것입니다.

 여하튼 일이 이렇게 되자, 이제는 정부가 나서서 이 만주사변을 지원하기 시작합니다. 당연히 중국을 비롯한 국제사회는 크게 반발했고, 국제연맹에서는 만주사변 조사단을 파견하게 됩니다. 이제 이 조사단이 진상조사를 하게 되면 철도를 폭파시킨 자작극이 다 드러나게 될 것이기 때문에, 조사를 흐지부지 시키기 위해 상하이를 공격해버립니다. 비유하자면 도둑질 한 것이 들통날까 봐 아예 강도짓을 해버리는 것이지요.

 일본이 상하이를 공격한 사건을 ‘상하이사변’이라고 부르는데, 이때 승전 기념 및 천황 생일 기념 행사에 폭탄을 던진 것이 바로 한국사에서 유명한 윤봉길입니다. 결론적으로 상하이사변은 한국과 일본 모두에게 유리한 사건이 되었습니다. 한국은 윤봉길의 거사로 중국의 전폭적 지원을 받게 되었고, 일본은 조사단을 흐지부지 시키는데 성공했기 때문이지요.

 그래도 일본이 만주를 먹는 것에는 명분이 없었기 때문에 만주 땅에 만주국을 세우고 청나라의 마지막 황제였던 푸이를 만주국 황제로 즉위시킵니다. 하지만 만주국은 사실상 일본의 속국에 불과하였고, 그저 중국을 압박하고 공격하는 전초기지 정도로 활용되었을 뿐입니다.

 이런 일들이 현재 우리의 상식 선에서는 미쳤다고 생각하겠지만, 당시 일본 국민은 혼란스러운 정치와 대공황 때문에 힘들어하던 차에 일본의 팽창을 극도로 반겼습니다. 대부분의 국민이 “역시 우리 대일본제국이야”라고 생각하게 되었고, 모두가 천황에게 충성하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흐름을 타서 과격한 젊은 장교들은 아예 정당 정부를 무너뜨리고 강력한 군사 정권을 수립할 계획을 세우게 됩니다. 그 결과 당시 총리였던 이누카이 츠요시를 대낮에 권총으로 쏴 죽여버리는데, 이 사건의 날짜를 따 5.15 사건이라 부릅니다. 이 사건 이후로 정치인들은 암살 당할까봐 함부로 말을 못하게 되고, 전쟁에 미친 군대 세력이 정치에 들어오게 됩니다.

 이제 대일본제국의 팽창은 당연한 것이 되었습니다. 만주국에 주둔하던 관동군은 이제 한 발짝 더 나가 열하를 점령하기에 이르렀고, 국제연맹에서 이를 문제삼자 노빠꾸로 국제연맹을 탈퇴해버립니다. 이제 일본은 전 세계를 적으로 돌린 것이나 마찬가지인 셈이었습니다. 하지만 유럽이고 미국이고 제1차 세계대전 ptsd에 함부로 먼저 전쟁을 벌일 생각을 하지 못합니다. 나중에 세계사 얘기를 하게 된다면 자세히 다루겠지만, 나치가 그만큼 성장할 수 있었던 것도 유럽 애들이 선빵을 못 쳤기 때문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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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팽창 과정을 짧게 다룬 지도입니다.

 당연하지만 국가의 팽창에는 강력한 군대가 필요한 법입니다. 따라서 일본은 국제연맹에서 탈퇴한 이후 급속도로 군비를 확장하기 시작했고, 이는 일본인의 총생산으로 감당하지 못할 수준까지 커졌습니다. 이에 일본은 완전 전쟁상태에 돌입하느냐, 팽창을 멈추느냐에 기로에 서게 되었습니다.

 당연히 정치인들을 비롯해서 많은 사람들은 전쟁이 일어나면 무조건 질 것을 알고 있었기에 점점 군비를 줄이자는 방향으로 기울었습니다. 이때 또 전쟁, 대일본제국, 천황에 미친 젊은 장교들이 “천황의 판단을 흐리는 간신들을 죽여서 대일본제국을 바로잡자”며 하루 사이에 총리와 장관들을 습격하고 거리를 점령해버립니다. 이 사건도 날짜를 따서 2.26사건이라 부르는데, 이 때 조선의 총독으로 잘 알려진 사이토 마코토(?藤?) 등 중요 인물들이 사망하게 됩니다.

 천황과 함께 정책을 논의하던 대신들이 순식간에 죽어나가자, 124대 쇼와(昭和) 천황은 아주 강경하게 이 사건을 비난하였습니다. 천황을 위하자는 것이 명분인데 천황이 반대를 하자 반란군은 충격을 먹었고, 다들 투항하거나 자살하면서 사건은 쉽게 막을 내립니다. 하지만 5.15 사건에 이어 2.26 사건까지 일어나면서 군부를 막을 정치인은 아무도 없게 되었고, 이후부터 일본은 사실상 군사독재 상태가 됩니다.

 군인이 정치를 장악한 순간부터 전쟁은 확정된 것이었습니다. 이제 일본은 이 감당할 수 없는 군비를 다른 나라를 점령해서 충당할 계획을 세웁니다. 그리고 그 다른 나라란, 바로 중화민국이었습니다. 안 그래도 이미 만주사변, 상하이사변, 열하사변을 통해 중국이 호구라는 걸 경험했기 때문에 쉬울 것이라 생각했던 것이지요.

 1937년 7월 7일, 베이핑(北平, 현재의 베이징) 근처에서 루거우차오(盧溝?, 노구교)라는 다리에서 총성과 함께 일본군 한 명이 실종되는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사실 그 실종자는 똥싸러 간 거였는데, 이를 중국의 소행으로 오해한 일본군은 중국을 공격하였습니다. 이것이 루거우차오 사건인데, 이 사건으로 중일 감정이 극단으로 치달아 결국 본격적인 전쟁이 시작되고 맙니다. 바로 ‘중일전쟁’인 것이지요. 여담인데, 가끔씩 청일전쟁과 중일전쟁이 같은 전쟁인 줄 아는 학생들이 있습니다. 근데 청일전쟁은 청나라와의 전쟁이고, 중일전쟁은 중화민국과의 전쟁입니다.

 갑작스레 시작된 전쟁. 일본은 기왕 벌어진 거 순식간에 끝내자며 밀어붙이기 시작합니다. 전쟁이 벌어진지 반년도 안 되어 수도 난징이 함락되고, 중화민국 정부는 충칭으로 도망치게 됩니다. 일본군은 정부가 사라진 난징에서 몇 개월 간 머물면서 수많은 사람들을 죽이고 약탈하고 강간하는, 이른바 난징대학살을 벌이게 됩니다. 이때 죽은 중국인이 대략 10~20만명 정도가 된다고 합니다.

 분명 이때까지만 해도 전쟁은 금방 끝날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중국 땅덩어리도 드럽게 넓고 사람도 드럽게 많아서 아무리 진격을 해도 끝이 안 나는 것입니다. 무엇보다 중국 깊숙히까지 쳐들어가게 되자 보급선이 길어져서 점점 식량과 무기가 부족해지게 됩니다. 이미 1938년부터 일본과 그 식민지에 국가총동원령을 내려서 모든 물자와 인력을 수탈하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부족했습니다.

 특히 일본에게 부족한 것은 석유와 고무였는데, 특히 석유는 미국의 수입에 의존하고 있는 형편이었습니다. 근데 일본이 중국 해안지대를 다 먹고 홍콩과 동남아를 넘보자 미국이 그건 선 넘는 거 아니냐면서 석유 수출을 안 하겠다고 협박을 합니다.

 이에 일본은 고민을 하긴 하지만, 결국 대일본제국의 앞길을 가로막는 미국을 처단하기로 결정합니다. 1941년 12월 7일, 선전포고도 없이 일본의 비행기가 하와이 진주만의 군함들을 폭격했습니다. 이와 더불어 영국령 홍콩, 프랑스령 인도차이나, 미국령 필리핀을 공격하면서 서양 열강들과의 전면전을 시작했습니다. 당시 일본은 나치독일과 동맹을 맺고 있었고, 나치독일은 영국 등과 전쟁(제2차 세계대전)을 하고 있었는데, 일본이 영국과 미국을 공격한다? 이는 즉 일본이 제2차 세계대전에 뛰어들었다는 뜻이며, 나아가 미국이 중립을 버리고 영국 편에 섰음을 의미합니다. 사실상 제2차 세계대전의 승패는 여기서 결정난 셈이지요.

 미국은 처음에 당황하였고, 일본은 승승장구하여 인도차이나 반도와 필리핀, 인도네시아를 점령하고 호주를 위협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근데 이게 승승장구가 아닌 게 당시 인도차이나 반도를 지배하던 프랑스와 인도네시아를 지배하던 네덜란드가 모두 나치독일에 의해 함락되었기 때문에 사실상 무방비 상태였던 것입니다. 그런데도 일본은 이게 자기들 힘인 줄 알고 막 신나서 영국령 버마(현재의 미얀마)도 공격하고, 태평양도 공격하고 아주 난리를 피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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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2년 초 일본의 최대 영토입니다. 이렇게 전쟁이 끝났다면 이곳은 여전히 대일본제국의 속령 조선이었을 것입니다.

*빨간 선은 일본의 영역, 파란 선은 진격 방향입니다.

 하지만 초초강대국 미국이 이걸 두고 볼리가 없었습니다. 미국은 바로 진주만에서 부서진 함대를 재건하여 즉각 일본을 공격합니다. 미국이 본격적인 공격을 시작하자 일본은 미드웨이 해전, 과달카날 전투 등 중요한 지역에서 대패를 당하고, 슬슬 일본 내에서도 이거 큰일났다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합니다만 이미 늦은 일이었습니다.

 일본은 이판사판으로 버마를 넘어 영국령 인도를 공격해보지만 이마저도 실패로 돌아간 데다가 중국 쪽은 여전히 중일전쟁이 진행중이고, 미국은 태평양의 섬들을 하나하나 점령해가며 일본의 숨통을 죄고 있었습니다. 특히 태평양에서의 패전은 정말 위협적이었는데, 이 전쟁을 괜히 ‘태평양 전쟁’이라고 부르는 게 아닙니다. 일본은 중국과도 싸우고 영국과도 싸웠지만, 결국 쳐발린 건 전적으로 태평양에서 미국한테 졌기 때문입니다.

 1945년 2월, 태평양에 있는 일본 식민지를 모두 점령한 미국은 이제 일본의 본토인 작은 섬 이오지마를 공격했습니다. 역시 본토답게 전쟁은 매우 치열했으나 결국 1달 만에 일본군이 전멸하게 됩니다. 이어서 일본의 진짜 본토라고 할 수 있는 오키나와를 공격하였고, 이 또한 미군의 손에 점령당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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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평양 전쟁을 상징하는 이 사진은, 이오지마 전투에서 찍힌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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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패전 과정입니다. 동남아나 중국 쪽은 밀려도 만주와 조선이라는 방파제가 있는데, 태평양 쪽은 밀리면 바로 본토가 털린다는 점에서 태평양 쪽 전투는 매우 중요하였습니다. 그리고 보시다시피 대체로 태평양에서 일본이 털리고 있습니다.

*초록 선은 일본의 진격방향, 파란 선은 미국의 진격방향입니다.

 이제 일본에게 남은 것은 항복 또는 전멸, 이 두 가지 뿐입니다. 보통 이쯤 되면 항복을 선택하겠지만, 일본은 제정신을 잃고 전멸을 택하게 됩니다. 미국은 1년이 넘는 기간동안 토쿄 등 주요 지역에 폭탄을 떨어뜨려 불바다로 만들었지만, 천황이라는 위대한 신 아래에 모두가 말없이 복종하였습니다. 조선은 말없이 복종하지는 않았지만, 민족말살을 통해 천황을 신으로 받아들이게 만들어 복종을 강요했습니다. 징용으로, 징병으로, 또 위안부로 숱한 식민지 사람들이 끌려갔고, 막판에는 일본 사람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병사들은 무모한 돌격을 감행하다 모두 죽었으며, 비행사는 카미카제 돌격으로 자폭했습니다.

 이제 미국은 더이상의 희생은 무의미하다 여기고, 희생 없이 일본을 항복시킬 무기를 준비하게 됩니다. 그것은 바로 원자폭탄이었습니다. 원래는 독일에다 쏘려고 했는데, 독일이 1945년 5월에 항복을 하면서 일본으로 방향을 돌린 것이었습니다. 한편 소련도 독일과의 전쟁이 끝나자 얄타회담에서 약속했던 대로 일본으로의 공격을 준비합니다. 이제 일본의 멸망은 눈앞으로 다가온 것입니다.

 1945년 8월 6일,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이 투하되었습니다. 이어 9일에는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이 투하되었습니다. 우리가 흔히 북한에서 핵 쏜다 이런 말을 쉽게 하지만, 원자폭탄은 엄청난 것이었습니다. 당시의 참상은 일본이 지금까지 해온 것을 잊을 정도로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었는데, 일본 정부는 여전히 전쟁을 지속하겠다는 입장을 취했습니다.

 그러자 이제는 소련이 나섰습니다. 일본은 이제까지 소련이 절대 일본을 공격하지 않을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었는데, 소련이 만주로 밀고 내려오자 완전히 희망을 잃어버립니다. 이에 쇼와 천황은 15일에 무조건 항복을 선언하면서 1937년부터 시작된 전쟁은 모두 종료되었습니다. 이와 별개로 소련은 만주를 넘어 한반도까지 내려왔고, 미국은 급히 한반도 남부를 차지하면서 조선은 남북으로 분단이 되어 버립니다.

 자..이렇게 하여 일본제국의 멸망 과정을 다루어보았습니다. 정말 뭐라고 딱 정리하기 어려울 정도로 많고 복잡한 사건이 일어난 시기입니다. 그나마 한국사와 관련있는 것이 많다 보니 조금 친근하게 다가오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한편 생각해볼 만한 것은, 일본제국의 패망은 단순히 전쟁에서 시작된 것이 아니라 근대화의 중심에 있었던 천황이 아니었나 하는 점입니다. 천황은 일본의 자존심이자 신이었습니다. 요즘 우리나라에도 소위 국뽕, 환빠라 하는 것이 있는데...일본제국에서 천황의 쓰임새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참으로 배격해야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하여간 이 긴 글 읽으시느라 참 고생 많으셨습니다. 다음 시간에는 일본 편의 마지막인 현대에 대해 다뤄보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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